학창 시절, 매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은 단지 용돈으로만 쓰기엔 아까웠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지치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멀리 떠나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 사이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만들었다. 그때, 문득 내가 좋아하던 프리미어리그 팀, 리버풀 FC가 떠올랐다. 내 전 재산을 들고 무작정 떠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리버풀에서의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혼자 떠난 여행, 혼자만의 감정들
리버풀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저 도피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도피였다. 내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가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옆에 좋은 친구들과 가족이 있어도, 그들에게 내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마주한 감정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떠난 이 여행은 단순한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진정으로 돌아보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타지에서의 낯선 감정들이 오히려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들었고, 그 감정들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해 나갔다.
안필드와 제라드, 그리고 축구 팬의 로망
리버풀에서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단연 리버풀 FC의 홈 경기를 관람한 것이었다. 경기장에서 느꼈던 그 순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왓포드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리버풀은 2대 0으로 승리했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인 조타와 파비뉴가 각각 한 골씩을 넣으며 팬들의 열광적인 함성을 이끌어냈다. 그날의 경기는 그저 축구 한 경기 이상이었다. 경기장 전체가 붉게 물들며 울려 퍼지는 응원가와 팬들의 함성, 그리고 골이 들어가는 순간의 전율은 마치 내가 하나의 거대한 파도 속에 휩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느낀 감정은 단순한 승리의 기쁨을 넘어서,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모든 걱정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해 주었다.
축구 팬으로서 안필드에 가는 것은 마치 성지순례와도 같았다. 경기를 보는 것만큼이나, 경기장 곳곳을 둘러보는 경험은 리버풀 팬으로서 매우 특별한 순간이었다. 경기장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는 마치 역사 속의 한 페이지를 직접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오랜 팬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였던 스티븐 제라드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제라드의 유니폼과 사진들이 전시된 공간을 둘러보며, 내가 이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가 리버풀 FC에 남긴 유산과 영향력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은 나에게 단순한 관광을 넘어, 리버풀 팬으로서의 자부심을 새롭게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바에서의 피자와 맥주, 그리고 승
리버풀에서 보낸 날들 중 어느 날, 경기장 근처의 한 작은 바에 들러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리버풀의 원정 경기가 방영되고 있었고, 나는 피자와 맥주 한 잔을 주문해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간단한 음식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날의 맥주와 피자는 리버풀의 승리와 맞물려 그 어느 때보다도 맛있게 느껴졌다. 피자를 먹으며 스크린 속에서 리버풀이 2대 0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고민을 잊고 온전히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승리의 기쁨과 함께한 맥주 한 잔은 여행 중 누리는 작은 행복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이 리버풀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일상에 쫓겨 축구 경기를 자주 챙겨보지 못하지만, 힘들었던 시절에 떠났던 리버풀 여행은 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경험했던 순간들, 그리고 내가 스스로에게서 찾은 작은 성찰들 모두가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제 리버풀은 단순히 한 번 다녀온 여행지가 아닌, 언제든지 다시 찾아가 나를 회복할 수 있는 나만의 힐링 도시가 되었다. 그 도시에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나는 또 다른 새로운 나를 만날 준비를 할 것이다.